이거 써봐야 또 무거운 이야기겠구나, 싶어 일이 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4월 16일은 모두가 다 아는 것처럼 세월호 사고 10주기였습니다. 벌써 십 년이라니. 굳이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클리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참으로 길고도 무거운 세월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저는 그 날의 기억이 거의 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에 매년 4월 16일이면 그날의 기억이 얼마나 생생한지에 대한 회상을 펼쳐 놓곤 하는데요, 저는 대체로 할 말이 없습니다. 무엇을 했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가운데 '전원 구조'라는 자막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 그런데 돌아보면 사실 저는 이제 많은 일들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특히 돌아온 이후의 시간 속에는 정말 많은 기억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2009년에 돌아왔으니 올해로 딱 열다섯 번째의 4월을 맞이하는 셈인데요, 돌아보면 2010년대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대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그저 클라우드 속에 저장되어 있는 문서 파일들만이 저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파편입니다.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의 너무나도 생경한 기분, 부모님과의 어색한 조우를 넘어 서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 등등 굵직한 사건사고들이 정말 누렇게 바랜 신문 쪼가리처럼 시간의 축을 스치고 지나가다가 갑자기 빠르게 FF(Fast Forward) 되면서 2020년쯤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참으로 답답한 가운데,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합니다. 삽십대 초반에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저는 어떤 기억들이 나의 의지와는 별 상관 없이 희미해지거나 아예 지워져 버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일종의 자기 보호 기제 같은 것이랄까요? 물론 학문적인 근거 같은 건 전혀 없습니다.
원래 저는 기억력이 꽤 좋은 사람입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많은 일들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1980년 1월 1일 신문 1면에 등장한 떠오르는 태양이랄지, 그보다 더 이르게는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부모님과 상봉한 날의 기억, 외할머니의 환갑에 충남 예산의 '두꺼비식당'에서 손자손녀 다섯 명이 하늘색 재킷에 감색 반바지, 흰 셔츠에 바지 색깔과 같은 나비 넥타이로 차려입고(할머니의 양장점 작품입니다) 절을 했던 기억, 아버지가 연탄불 아궁이에 허리를 굽히고 냄비를 흔들어 튀겨주었던 팝콘, 그런 집에 처음 가스레인지가 들어왔던 1980년 아마도 5월, 아파트에 들어왔었던 펩시 챌런지 등등등... 나름 다채롭고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런 가운데 비교적 최근에 벌어진 일일 수록 기억이 희미하다는 것을 날로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거래처의 누군가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가 일 때문에 저희 집에 다른 사람들과 왔었던 적이 있고, 그때 제가 음식을 만들어 대접했다고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가 일행 중 한 사람이었으며 제가 음식까지 만들어 식사를 대접했다는 사실이 기억에 전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네, 쓸까말까 한참 망설였다는 게 사실은 하나마나한 이야기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생활 패턴을 아침형으로 되돌리려고 정말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의 일부를 당분간 접어놓았을 정도로 총력전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어느 정도는 먹히고 있습니다. 수면의 질이 조금 달라졌고 아침에 꽤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신 집에 있지 않고 좋은 날씨를 핑계삼아 이곳저곳 밖으로 돌고 있습니다.
요즘 나온 음악들 가운데서는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신보를 가장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저는 이들을 꽤 좋아했는데 지난 앨범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번 앨범은 그 앨범을 뺀 1~3집의 좋은 점들만 모으고 잘 다듬은 다음 확장 구축한, 크고 안정적이면서도 흥겨운 음향의 공간입니다. 잘 성장하는, 나이 아니 먹는 창작자가 만든 결과물이 이런 거구나, 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도 사실은 이렇게 큰 공간 같은 프로젝트를 (또) 구축해야 할 것 같아서 최근 액션 카메라를 샀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즐겁고 유익한 이야기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벌써 낮 최고 기온은 여름이라 초파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한 치수 작은 것으로 바꿨는데도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여름 걱정은 언제나 철 이르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