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한 봄입니다. 저에게 그렇다는 말입니다. 목련과 벚꽃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는데 마음이 너무 덤덤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왔지만 '오 봄이구나 그래도 봄이 또 온거야'라고 감회에 적절히 젖고는 했습니다만 올 봄은 약간 남의 세계를 멀리서 바라 보는 듯한 느낌이 자꾸 듭니다. '아, 댁의 동네에 봄이 찾아왔다고요? 꽃이 피었다고요?'와 같이 먼발치에서 흐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물어보는 형국이랄까요.
표면적인 원인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환경의 변화인데요, 최근 10년 정도를 돌아보면 대체로 주거지에서 목련과 벚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 6월에 떠난, 4년 동안 살았었던 강서구의 아파트는 1992년에 지어 내부의 수목이 엄청 우거진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목련도 벚꽃도 풍성했죠. 역시 1992년부터 존재했을 것 같은, 아파트 내부의 가로수에 판자로 둘러 놓은 벤치에 앉아 꽃잎이 날리는 걸 보는 마음은 나름 각별했습니다.
그러다가 주변에 나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주택가로 이사를 오니 아무래도 꽃을 좀 덜 보게 되긴 하는데요, 그래도 엄청난 불광촌의 벚꽃도 보았고 연희, 연남동에서도 볼 만큼 보았다고 생각하는데도 저의 마음은 참으로 덤덤하기 이를 데 없어서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지경입니다. 너는 대체 어떤 인간이 되어 버린 것이냐? 라는 생각이 자꾸 드려고 하네요.
하여간 그래도 봄이라고 계절에 어울리는, 그러니까 봄이면 늘 듣는 노래들을 모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보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유튜브에서 베이루트의 공연을 보았는데 정말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베이루트의 팬은 아니고 플레이리스트에 포함시켰을, 노래 한두 곡 정도를 봄에 좀 듣는 수준이었는데요. 그가 부르는 선율을 들으며 정체를 알기는 알지만 굳이 파헤치고 싶지 않은 아득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침대에서 고양이와 누워 듣다가 속으로 눈물을 잠시 흘렸습니다.
선유도역 인근의 어느 골목에는 당연히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냥 저만 안다고 우기는 벚꽃 스팟이 있습니다. 2017년쯤인가 우연히 알게된 곳인데 봄이면 한번씩은 꼭 찾아가곤 했는데, 작년과 올해는 생각을 못했네요. 며칠 전 우연히 아이패드가 만들어준 옛 꽃사진들의 슬라이드쇼를 무심코 넘기다가 그곳의 사진을 보고는 오랜만에 떠올렸지만 이미 꽃을 보기에는 늦은 때였습니다. 그대로 달려갔더라면 파릇파릇 돋아나는 잎 사이로 바랜 꽃잎 몇 장이라도 볼 수 있었을까요? 그랬다면 마음이 좀 덜 덤덤했을까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덤덤함은 제가 다 어떻게든 끌어 안고 있을 테니 여러분들은 가슴 부풀어 오르는 봄을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밤산책하기 너무 좋은 계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