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언젠가, 이탈리아의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부고를 접했습니다. 향년 82세. 결국 그렇게 되고야 말았구나. 2022년, 내한 소식에 부리나케 예매를 하고는 과연 성사될까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결국 공연은 취소되었고 그는 한국에서 연주를 해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그냥 평소에 즐겨 듣는, 그리 많지는 않은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면 저는 이 글을 쓸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제 마음 속에 그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연주자입니다. 그러니까 2014~2017년, 저는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수입은 거의 바닥을 치는 가운데 상당한 악플과 인신공격에 시달렸습니다. 그런 가운데 번역 프로젝트인 '실버 스푼'도, 저서인 '한식의 품격'도 상당 기간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궁지에 몰리는 기분으로 살았던 저는 그 기간의 상당 부분을 폴리니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폴리니의 소나타라니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1960년 18살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등장했듯 쇼팽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의 쇼팽을 지금까지도 거의 모르고 베토벤으로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듣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합니다.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선배로부터 씨디로 선물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몇 년에 걸쳐 전집을 꾸준히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전체를 고루 듣기 위해 순서를 바꾸어 듣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맨 처음이기 때문에 1번을 가장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일 일과를 시작하면서 듣는 1번에는 나름의 맛이 있었습니다. 경쾌하지만 경박하지 않으면서도 박자감이 살아 있는, 오른손의 상승하는 선율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매일의 과업을 헤쳐나갈 의욕과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도움을 받았기에 저는 2017년 우여곡절 끝에 '한식의 품격'을 출간하며 '감사의 말'에 알프레드 브렌델, 머레이 페라이어와 더불어 그의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 베토벤 소나타 전집과 함께 말이죠. "(전략)두 번째는 창조자다. 아름다음을 자아내는 이들이다. 그들이 자아내는 아름다움 덕분에 글쓰기의 지난함과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나에게는 그만큼의 아름다음울 자아낼 능력이 없어도, 그 아름다움은 이상의 세계를 설정하고 글쓰기를 통해 도전하는 데 끝없는 자극을 주었다. '한식의 품격'을 쓰는 동안 그들은 클래식 음악가, 피아니스트였다(후략)"
이런 그였기에 내한 소식을 듣자마자 제 형편에 전혀 맞지 않는 35만원짜리 S석을 덥석 예매하고도 마냥 기뻤건만, 폴리니의 실연을 보겠다는 저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의 부고를 들은 그날 밤, 저녁을 먹고 나선 산책길에서 오랜만에 베토벤 소나타 1번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연주를 끝까지 듣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슬픔과 더불어, 이 곡에 기대어 살아갔던 당시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되 연주는 마음이 다시 닿을 때 듣기로 했습니다.
좋아하는 무엇인가를 찾기도, 찾아도 마음 놓고 즐기기도 쉽지 않은 현실을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을 베풀어주던 이들의 안녕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한식의 품격'에서 언급했던 나머지 두 피아니스트 가운데 브렌델은 이미 15년 전에 은퇴해 구순을 넘겼고, 76세인 페라이어는 2017년 이후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소식도 거의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또 다른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필립 글라스가 최근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올해 87세인 그의 연주는 좋게 말하면 순박했고 슬프게 말하면 힘이 많이 빠져 있어 들으며 울컥했습니다.
솔직히 요즘 저의 건강 상태를 감안하면 과연 76살까지라도 살게 될지 참으로 의문입니다만 그건 제가 알아서 헤쳐나가야 할 저의 문제이고, 오늘은 상당히 힘들었던 시간 동안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폴리니의 명복을 빌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연주, 감사했습니다. 편안히 쉬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