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냉장고를 고쳤습니다. 17년째 쓰고 있어서 이제 죽은 것 아닐까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 의외로 7만5천원에 작은 모터 하나를 갈고 다시 짱짱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물, 각종 차, 제로 식혜 등등의 음료를 차갑게 먹을 수 있어서 삶의 만족도가 상당히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액체, 좀 더 정확하게는 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제가 여름에 즐겨 마시는 술을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무알콜 맥주
조금 이상할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맥주 만큼은 이제 무알콜로 완벽하게 정착을 했습니다. '아니, 알콜도 없는 맥주가 무슨 맥주냐!'며 발끈하실 분들도 있겠습니다만 이게 은근히 나쁘지 않습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까지는 아닙니다만 발상을 좀 전환하면 맛의 느낌도 사뭇 달라집니다. 맥주가 아니라 고급 탄산 보리음료를 마신다고 생각하는 거죠. 실제로 무알콜 맥주를 뺀 나머지 보리음료들은 착향료를 써서 맛이 매우 흐리멍텅합니다. 하지만 무알콜 맥주는 실제 맥주에서 알콜을 걷어내서 만들기 때문에 맛과 향이 꽤 준수합니다. 특히 가열식보다 여과식인 하이네켄이나 칭따오가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것들 가운데는 가장 맛있습니다.
2. 여름 와인
여름엔 화이트 와인이죠. 특히 아주 싼 것들도 더운 날씨에 비비면 꽤 마실만해 집니다. 이탈리아의 스파클링인 프로세코나 포르투갈의 '녹색 와인' 비뉴 베르데가 가장 만만합니다. 물가가 무서울 지경인 요즘이지만 그래도 이삼 만원 대에서 두 사람이 기분 좋게 마실만한 것들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저렴한 와인들은 특히 이렇게 더운 계절이면 얼음을 더해 마셔도 좋습니다. 온도도 낮아지지만 저렴한 와인 특유의 맛과 향이 기분 좋을 정도로 희석되기도 합니다. 잘 익은 토마토를 대강 썰어 소금에 절여두었다가 다진 마늘을 좀 더해 만든 소스에 버무린 파스타 정도라면 안주든 식사든 잘 어울립니다.
3. 캄파리와 파인애플주스
이탈리아 아마로의 대표인 캄파리는 여름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기 좋습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만 저는 파인애플주스와 대충 섞어 마십니다. 레시피는 딱히 없고 얼음잔에 둘을 섞어 잘 저어주면 되고 탄산수를 더해도 좋습니다. 아니면 2의 프로세코와 더해 스프리츠를 만들어도 좋고요. 파인애플주스가 관건인데 저는 작은 팩 32개들이를 사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