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진지하게 대장 내시경을 받으라는 소견을 들어서 정말 매우 진지하게 우려했습니다. 4년 전 검진을 어쩌다 건너 뛰어서 확신이 없기도 했고요. 그래서 최대한 빨리 장을 깨끗하게 비우고 검진을 받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상없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뭔가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삶의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있는 것들에 대응하며 살고 있는지라 쓸데 없이 낙관 않고 여러 가지를 생각했는데요, 덕분에 삶의 고민 자원을 재배분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돌연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냐 고민을 하나 안 하나 사람이 주변에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이런 생각이 든 겁니다.
저는 한동안 분노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한 표현을 빌자면 '타고 남은 재처럼 속에서 은근히 타고 있는' 분노였죠. 작년 말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일들을 올해 전반기의 마지막까지 처리하고 나니 안도감도 안도감이지만 그런 종류의 분노가 함께 찾아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또 뭐냐 지겹다 좀 가라...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번 건강검진 소동(?)으로 싹 날아가 버려서 사는 게 조금 더 즐거워졌습니다. 원래 한 80이었다면 지금은 대략 92쯤의 상태가 된 것 같습니다. 이만하면 매우 훌륭하죠. 올해는 그런 해였던 같습니다. 사실 저 자잘하지만 끈덕지게 꺼지지 않고 타고 있는 분노를 빼놓으면 올해는 매우 좋았습니다. 건강도 좋았고 더 즐거웠으며 일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아 내년이면 오십대인데 어쩌지?'라며 초조함에 시달렸던 작년 말이 우스울 지경입니다.
10월에 비가 끈덕지게 내려서 가을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요즘 낮 기온이 제법 올라가더라고요. 이러다가 다다음 주 쯤 또 확 추워지겠죠. 그때까지만이라도 이 날씨를 즐기시기 바랍니다. 독감 백신 안 맞은 분들 꼭 맞으시고요. 올해도 꽤 지독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