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저는 저도 모르게 이 뉴스레터를 한 달도 넘게 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완전히 몰랐다고 그러면 그건 거짓말이겠고요, 알고는 있었는데 이런저런 일들이 좀 있어서 쓰겠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 일들 가운데는 말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있는 것도 있는데 있는 게 가장 큽니다.
다음 책 원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문에 연재했었던 '필름 위의 만찬'의 원고를 대략 지난 뉴스레터를 보낸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손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원고지 10장짜리 연재여서 글이 상당히 압축되어 있는데다가 영화는 그냥 소개나 하는 수준으로 언급했기 때문에 뼈대는 상당 부분 살리더라도 영화에 대한 살을 대폭 보충하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물듯 실마리가 될 만한 다른 영화들도 찾아보고 어쩌고 하다 보니 결국 어떤 동굴에 들어간 것 같은 상태가 되었고 그 상태의 관성에 어느새 익숙해져 있어서 이 뉴스레터를 포함한 다른 글도 쓰지 않고... 그렇게 된 것입니다. 뜨개를 위한 외출을 빼놓고는 사람도 안 만나고 아무 데도 가지 않고 그냥 집에서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엔 영화를 보거나 누워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게 뭐 좋은 상태냐 물으신다면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것 같지만 또 나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고 제가 일부러 이런 여건을 만들거나 한 것도 아니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이런 상태가 되어 있어서 으잉 그렇군? 하고 나름 자연스러운 것 같다 싶어 일부러 뭔가를 바꾸거나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가 좀 기분 나쁘게 오는데 다들 안녕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좋든 싫은 이 관성 속에 조금만 더 몸을 맡겨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