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마지막 남은 글쓰기 에너지를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에게 바치는 부고(사실은 감사 인사)에 쓰고자 합니다. 대략 십 년쯤 전, 저는 드디어 피아노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어 트위터에서 사람들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들으면 좋을까요? 피아노는 어머니의 직업이었고 저희 가정의 생계 수단이었으므로 대략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음악을 즐겨 듣기 시작한 이후에도 제대로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학원에서 피아노 예닐곱 대가 한꺼번에 내는 굉음 아닌 굉음을 오래 듣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 거죠. 뭐 어머니 본인은 얼마나 힘드셨을지 그건 생각도 못하고 살았네요. 저는 불효자였습니다.
하여간 어떤 심경의 변화로 클래식 피아노 곡들을 듣고 싶어 찾고 물을 때, 가장 먼저 추천을 받은 앨범이 알프레드 브렌델의 '악흥의 순간(슈베르트)'이었습니다. 필립스에서 1990년대에 발매된 두 장짜리 씨디인데요, 첫 곡인 즉흥곡 899를 듣고 저는 바로 빠져들었습니다. 인간에게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육성이 있기에 우리는 악기가 노래한다는 표현을 잘 쓰지 않는데요, 대신 쓴다면 엄청난 찬사가 됩니다. 이를테면 제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 데렉 트럭스의 슬라이드 기타가 그런데요, 하여간 이 899를 듣고 피아노가 노래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단 멜로디 뿐만 아니라 그 멜로디의 연주마저도 인간의 노래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후 저는 계속 추천도 받고 혼자 찾아 나서기도 해서 아주 좁은 범위의 클래식 피아노 소나타나 협주곡을 듣게 되었습니다만, 그 모든 작곡가와 곡과 연주자의 조합 가운데 최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받게 된다면 바로 이 슈베르트-899-브렌델의 조합을 꼽을 것입니다. 이것이 객관적으로 그의 최고 연주인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힘들때면 기댈 수 있고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슈베르트의 899, 그리고 소나타 960으로 브렌델에게 빠져 들었을 때 그가 이미 은퇴 공연을 한지도 칠팔 년이 지나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 은퇴 공연이 또 그렇게 좋더라고요. 특히 완전 마지막의 두 곡 899의 3악장과 바흐의 'Num Komm, Der Heiden Heiland (자 오라, 이방인의 구세주여)'의 연결은 '어느 거장의 육십 년에 이르는 연주 경력을 마무리하는 방식은 또 이렇구나'라는 생각에 종종 감정에 북받치곤 합니다. 어쩌면 더 격정적일 수 있는 부분에서 힘을 빼고 다소 평이하게, 어쩌면 조근조근하게 넘어가는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그의 입장에서 궁금해집니다. 과연 이 연주를 하는 순간, 그는 이것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연주에 몰입해 마지막 음표의 잔향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삶은 언제나 내리막길과 시궁창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야말로 시궁창의 내리막길을 걸었었던 칠팔 년 전, 저를 살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을 연주를 들려주었던 브렌델 옹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의 명복과 영원한 안식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