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뉴스레터를 한참 동안 보내지 않는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입니다. 일 외의 글을 쓸 에너지가 없거나, 아니면 너무 많이 쓰고 있느라 더 이상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언제 시작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 뉴스레터를 써 온 세월 동안 이유는 늘 첫 번째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두 번째 이유 때문에 거의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요즘 약간 폭주기관차처럼 살고 있습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이 있지요. 지금 제 두 손은 모터가 되었습니다. 물을 너무 빨리 저어서 지금 어디에 얼마 만큼 나와 있는지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뭍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엇인가의 공모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전조는 작년 말에 찾아왔습니다. 7-8년 안 써왔던 글을 갑자기 쓸 수 있게 돼서 '오, 이런 시기가 오긴 오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써서 내보냈는데요, 그 연장선상에서 갑자기 3월부터 저는 폭주를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전업으로 글을 써 온 16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어떤 흐름이나 기운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제 안에 있던 어떤 결계가 드디어 풀린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친 듯이 써서 공모전 1에 마감 사나흘 전 원고지 350장을 써 보냈습니다. 한 달 정도 걸렸을 겁니다. 그리고 뭔가 아쉬운 기분으로 인터넷을 뒤지다가 7월에 또 공모전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건 공모전 1에 쓴 것의 최소 두 배 정도를 써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잠깐 머리를 굴려보니 왠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공모전 2도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동아일보에서 어느 날 메일을 받았습니다. 외부 필자로 촉탁하고 싶다는 내용이었죠. 그렇지 않아도 작년 한국일보 연재를 마친 뒤 여러 모로 머리가 복잡해졌던 차였는데 너무 잘 됐다 싶어 샘플 몇 편과 기획안을 보내 합을 맞춰보고 지지난 주부터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한편 2주 쯤 전에는 작년부터 준비한 앤솔로지가 하나 나왔습니다. 인스타그램의 포스팅을 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아마 처음으로 참가한 앤솔로지일 것입니다. 저는 솔직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책을 내고 싶은 생각이 없고 낼 책의 원고도 소재도 잔뜩 쌓여 있는 건방진 사람인데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어 참여했습니다. 무엇보다 한 5-6년차 이상의 경험이 쌓이면 써 보고 싶은 뜨개책의 파일럿 버젼 같은 걸 시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네, 뜨개를 하는, 좀 더 정확하게는 제가 뜨개를 하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현재 네 가지 일을 저글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밥 벌어주는 글쓰기(와 라디오 출연), 또 다른 하나는 밥 안 벌어다주는 글쓰기, 아버지 사후 수습(아직도 끝이 안 났습니다...), 그리고 뜨개입니다. 앞의 셋이야 뭐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야 무슨 정신으로 뜨개를 하고 있는 거냐?'라고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을 드리자면 사실 뜨개가 없으면 이 모든 것은 전혀 돌아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당장 해야만 하는, 돈 나오는 일만 하고 나머지 시간엔 고양이와 침대에서 잠만 자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앤솔로지에 쓴 글의 제목은 바로 '뜨개라는 불도저'입니다. 5월 1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0분~1시간씩 글을 써서 지금 대략 600장 정도의 원고를 모았습니다. 800장쯤에서 마무리하고 퇴고를 하면 7월의 마감까지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드디어 본격적인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올해 31년 만에 청수냉면을 샀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먹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오늘 딸려 보내는 비디오는 2시간이 넘지만 절대 시간이 아깝지 않으실 겁니다. 슬슬 공기가 시원해질 지금부터 틀어놓아 보세요. 그럼 밤이 완전히 찾아올 때쯤 끝날 것입니다. 그리고 들으신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