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막막한 기분으로 눈을 떴습니다. 특히나 명절, 연휴에 이런 기분으로 눈을 뜨는 건 참으로 낯선 일입니다. 일을 안 해도 되는데! 얼마든지 놀 수 있는데! 그런데 왠지 기분이 썩 좋지 못합니다. 저는 어쩌다 이런 기분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지난 뉴스레터를 보낸 이후 꽤 정신 없이 살았습니다. 일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는 탓입니다. 일의 가짓수가 약간 관리 어려운 방향으로 늘어나거나, 들여야만 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보수가 좋지 못한 상황을 의미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나씩 쳐내며 감정이 꽤 상한 상태로 연휴 직전까지 왔습니다. 저에게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연휴가 되기 전에 지지난 달에 나온 책의 인세를 받는 것이었죠. 직장인들이라면 이 시기에 성과급, 하다 못해 스팸 선물 셋트라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프리랜서에게는 그런 게 없습니다.
하루이틀 이렇게 일해온 것도 아니니 굉장히 익숙합니다만, 이번 설에는 기분이 좀 달랐습니다. 뭐라도 받고 싶더군요. 어차피 제가 낸 책의 인세이고 또 나올 때도 지났으므로(대체로 책 출간 후 1개월 이내에 나옵니다. 책은 12월 중순에 나왔습니다.) 기대 아닌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파심에 편집자에게 당부도 했습니다. 연휴 전에 꼭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세요.
그런데 어제 오후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저는 결국 편집자에게 연락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부장님, 오늘까지 인세가 들어오지 않는 건가요? 알아보니 농협 계좌로 1월 31일에 입금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에게는 농협 계좌가 없습니다. 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겠죠.
확인을 해 보니 동명이인에게 입금이 되었다고 합니다. 담당 직원들은 이미 모두 조기퇴근을 했고요. 물론 저에게 그 돈이 당장 필요한 상황은 아닙니다. 연휴 사나흘 정도는 금방 지나갈 테고요. 하지만 사람 기분이라는 게 그렇지 않을까요... 갑자기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딴 곳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연휴에 해먹으려고 돼지갈비를 사러 나갔다가 평소에 이런 일을 겪은 것보다 더 침울한 기분으로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피자를 시켰습니다. 저는 요즘 여러 이유로 피자 같은 걸 정말 웬만하면 먹으면 안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점심 때까지 자다가 일어나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만 대신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참으로 막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마치 숙제처럼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사는 것이 부담처럼 느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 연휴가 막 시작되었는데 이러면 매우 곤란해집니다. 어떻게 하지?
할 일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부엌을 치워야 합니다. 일요일에 청소 및 정리를 해 놓는 부엌은 금요일이면 굉장히 정신이 없어집니다. 오늘쯤부터 다시 손을 대야 주말에 한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할 여건이 됩니다. 채소를 열심히 먹으려고 브로콜리를 한 상자 샀으니 다듬어 데쳐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쩌지? 생각을 좀 하다가 이렇게 뉴스레터를 씁니다. 뭐라도 좀 쓰면 나아지지 않을까?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제 양에 찰 만큼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 돈을 버는 글쓰기야 매일 어떻게든 하고 있지요.
하지만 돈을 벌지 않는 글쓰기도 굉장히 중요한데 사실은 힘에 부쳐 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지 꽤 오래 됐습니다. 이 뉴스레터의 경우 플랫폼을 스티비로 옮긴 뒤 약간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WYSIWYG 에디터는 편하고 좋고 심지어 결과물이 예쁘기까지 한데 무엇인가 많은 컨텐츠를 집어 넣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자연스레 느낍니다. 이제서야 왜 스티비를 쓴 다른 뉴스레터들이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정신을 좀 차려보려 합니다. 양력이 현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저에게 음력 설은 약간 잉여 같은 느낌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면 복 받을 기회를 다시 한 번 가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실체가 없거나 현대의 삶과 맞지 않는 개념 같기도 합니다만 복은 참 좋습니다. 저도 복을 많이 받고 싶습니다만 그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하는 게 즐겁습니다.
그렇게 음력 설을 맞아 다시 한 번 더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모두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아직 2월 초이니 2024년도 엄청나게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복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면 지금부터 받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약간의 정신적 수렁에서 벗어나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용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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