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오이를 고르고 있는데 알림을 받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선종 속보였습니다. 순간 11월 새벽 성당의 차가웠던 마룻바닥을 떠올렸습니다. 저희 외가는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천주교를 믿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11월 말에 외할아버지의 기일이 있어서 온 외가 사람들이 모여 밤에 연도-최근 쓰고 있는 글에 연도의 설정이 있어 찾아보니 이제는 '위령기도'라 부른다는 걸 알았습니다-를 드리고 다음 날 새벽의 위령 미사에 참석하곤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11월 말이면 겨울의 문턱인데 외가가 있는 예산의 성당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마루여서 발바닥이 보통 시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더군요. 영세를 받기 위한 여름 성경학교를 초등학교 4학년 때 1등으로 수료한 저의 영세명은 안젤로입니다.
저는 서른 두 살 이후로 성당에 나가지 않아 천주교의 용어로는 '냉담자'입니다. 종교 혹은 천주교가 싫어졌다기 보다('내 탓이오 Mea Culpa'는 좀 싫습니다만) 제가 너무나도 세속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종교의 가르침대로 살 수가 없다는 걸 깨닫고 자진해 등을 졌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하여간 이런 냉담자임에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좋아했던지라 마음이 매우 아팠습니다. 그가 콘클라베를 통해 선출되었을 때 최초의 비 유럽 출신인데다가 검소하고 소탈한, 진짜 성직자 같은 이미지에 많은 이들이 기뻐하고 또 기대를 품었다는 걸 이 냉담자도 이해했고 또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폐렴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 못 사시려나 싶었는데 또 쾌유하셨다고 해서 당분간은 괜찮으시려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이게 다 빌어 먹을 J.D. 밴스 때문입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였던 기간의 대부분에 교황은 요한 바오로 2세였습니다. 그는 1984년에 방한해 한국의 순교자 103인을 복자에서 성인으로 추대하는 성인식을 말하자면 현지에서 열었습니다. 여의도에 아직도 롤러스케이트와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광장이 있었던 시절(현재의 공원 자리입니다), 천주교 신자 백만 명이 모였다고 알고 있고 저희 외할머니도 가셨었다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생각난 김에 뉴스를 찾아보니 1309년의 아비뇽 유수 이후 로마 밖에서 치른 첫 시성식이라고 하네요.
마침 영화 '콘클라베'가 아직도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 교황님이 선종하시는 바람에 관심이 꽤 큰 것 같습니다. 뭐 이제 냉담자라 잘 모르기는 합니다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재위 기간 동안 변화를 겪은 천주교가 과연 이 다음으로 어떤 행보를 선택하게 될 지가 달려 있기 때문에 관심이 안 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요즘 즐겨 듣는 리지 맥칼파인의 노래를 들고 왔습니다. 최근 LA의 음악씬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젊은 세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 가운데 메이슨 스툽스라는 이가 있습니다. 펜더의 신제품 홍보 영상에서 늘 인상적인 연주를 들려주어서 기억하고 있는데요, 그가 제작을 사고 기타도 쳤다고 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봄에서 여름으로'라는 제목이 어째 지금 분위기와 잘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공연 영상에서 기타를 치는 안경 쓴 젊은이가 바로 메이슨 스툽스입니다. 저는 요즘 현실을 좀 등지기 위해 가상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열중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