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힘겨워했던 어금니의 상태가 최근 부쩍 좋지 않아 치과 신세를 졌습니다. 보철로는 최첨단이라는 지르코니아 크라운에 55만원인가 들였지만 그만하면 참으로 다행이었습니다. 상태가 많이 좋지 않아서 뽑고 임플란를 해야 할 확률이 70퍼센트였던 치아를 일단 살려냈기 때문입니다.
저는 거의 20년 전에 임플란트를 이미 하나 해 넣었는데요, 이렇게 가짜 치아를 끼워 넣으면 이와 이 사이의 잇몸이 사라져 틈새가 커집니다. 그래서 음식물이 끼기 때문에 꽤 번거롭죠. 이를 알고 있는지라 새 임플란트는 최대한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훌륭한 선생님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상당 부분 깎아내고 신경치료를 해 이제 절반 정도만 남은 어금니에 크라운을 씌우는 순간 다스 베이더 생각을 했습니다. 스타워즈 3편 '시스의 복수' 막판에 그 유명한 철가면을 씌우는 장면이 나오죠. 양 다리와 한쪽 팔이 오비원에게 잘리고 용암에 머리털도 다 불탄 아나킨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장면의 상황을 제 어금니가 겪고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뭐 그렇게라도 일단 살아주는 게 어금니에게도 저에게도 좋은 일이겠죠. 이십대에 했던 교정의 역학구조가 뒤틀리면서 이 어금니의 각도가 틀어서 묘하게 교합이 맞지 않았는데요, 크라운을 교체하면서 보정해 씹는 느낌이 훨씬 좋아져 참으로 다행입니다. 이 크라운과 이미 해넣은 임플란트는 제가 죽어서 화장을 하더라도 아마 녹지 않고 남겠죠? 거기까지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죽음,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최근 상을 겪고 부모 없는 자식이 되었습니다. 쉰을 삼 개월 앞두고 벌어진 일입니다. 사실 29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그게 누구든 다른 사람의 죽음을 거울 삼아 내 삶과 죽음을 비춰보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을 얻어서 크게 의식은 하지 않는데요, 그와 별개로 현실에 복잡한 업보가 남겨진 바람에 처리를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네, 3월이면 저는 소위 '반백 살'이 됩니다. 이게 생각보다 크고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야 이제 50년을 살았으니 겪을 만한 일은 다 겪은 것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좀 놓으려던 찰나 복잡한 사정이 생겨버려서 좀 처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잘 사는 거 참 힘들다 늘 생각하고 사는데요, 잘 죽는 건 더 힘든 것 같습니다.
딱히 위로가 필요한 상황은 아니지만 현실의 복잡한 사정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웬만하면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전전긍긍하다가 여기에나 털어놓습니다. 좋지 않은 묵은 기억들이 무시로 쏟아져 내려 살짝 괴로운 나날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