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어느 무료한 오후, 반가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7년에 낸 '한식의 품격'이 중쇄에 들어간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기억이 맞다면 대략 5년 만의 중쇄 소식에 괜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것으로 5쇄이니 이만하면 이 책으로서는 버틸 만큼 버텨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식과 같은 책들이니 더 좋고 말고 할 게 없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한식의 품격'은 저에게 의미가 아주 큰 책입니다. 한식을 비평하고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는 건 쉬운 일일 수가 없겠죠. 어떻게 보면 하나의 점처럼 보이나 뭉쳐져 블랙홀처럼 엄청난 중력을 품고 있는 문제점들을 펼쳐내 글감으로 전체의 구조에 배치하는 작업은 지금 돌아보아도 치가 떨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원고지 열 장을 쓸 수 있으면 굉장히 생산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게 2,500장을 더듬더듬 썼습니다.
개인적인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망해서 들어왔는데 칠팔 년 만에 또 망한 꼴이었습니다. 일도 별로 들어오지 않아서 수입도 정말 보잘 것 없었던 가운데 거의 유일한 일이었던 레스토랑 리뷰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 거의 미친 사람 취급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30개월이 걸려 원고를 다 썼는데 이번엔 출판사가 말썽을 부렸습니다. 원래 담당 편집자가 퇴사한지 오래라 새로운 이에게 맡겼는데 그가 몇 달 동안 원고도 보지 않고 저와 소통도 하지 않으면서 관리자에게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또 몇 달이 지연되다가 결국은 계약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한식의 품격'은 '외식의 품격(2013)' 출간 이후 44개월 만의 신작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전업필자로 먹고 살면서 정말 말도 안되는 간격으로 책을 낸 판국이었죠. 새로운 출판사를 물색하고 또 책을 내기까지도 여러 곡절이 있었지만 들으시기에도 좀 지겨우실 것 같고 지금 꺼내기엔 때가 아닌 것 같아 다음을 기약해 보겠습니다.
솔직히 출간 7년 만의 5쇄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판매는 저조했습니다. '외식의 품격'이 초반 그래도 괜찮게 나가면서 결국 9, 10쇄까지 찍었으니 그와 어느 정도는 궤를 맞춰 가는 태세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사실 당시 의사 결정자의 '많이 읽힐 테니 책 값을 싸게 매기자'라는 결정은 실패였습니다. 562쪽짜리 "인문"서적이라면 2만원이 넘었어야 되는데 '한식의 품격'은 1만 8천원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소위 '가성비'가 사실은 너무 좋은 책입니다.
이처럼 판매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식의 품격'은 문제를 제기하고 담론을 조성하겠다는 나름의 목표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습니다. 알라딘의 평점과 딸린 리뷰가 방증 같기도 하고요. 물론 이 책도 출간 직후 상당한 인신공격에 시달리긴 했습니다. 쓰고 나니 까마득한 옛날의 이야기 같네요.
그래서 '한식의 품격'이 세상에 나온지 이제 7년, 약간 멀리 보아서 10주년이 될 때까지는 이 책에 육박하는 큰 작업을 하나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계속 머릿속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요, 문제는 지난한 작업에 지탱할 수 있는 체력 같습니다. 몸의 체력도 체력이지만 지금으로서는 마음의 체력이 걸립니다. 사실 저는 아직도 '한식의 품격'을 내놓았을 시기까지의 여파에서 마음의 체력을 회복하지 못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세월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그렇습니다.
6월 치고는 악독하다고 말할 수 있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장마가 찾아오는 모양입니다. 이제 토마토에 맛이 조금 들었고 드디어 천도복숭아가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제가 이 나날이 악독해지는 계절에 찾는 작은 위로들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것들이 이 계절에 작은 위로의 역할을 할지 궁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