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때는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동물이 그렇게 좋은가? 작은 개 정도가 드물게 집에서 사람과 함께 사는 정도였던 어린 시절, 관상동물들이 집에 머물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새장에 담긴 백문조 한 쌍을 들고 오셨더랬습니다. 아이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어디에선가 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시장에만 가도 관상동물 가게가 흔했던 시절, 흰 몸통에 빨간 부리의 백문조는 나름 귀여웠지만 솔직히 크게 정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새장이 거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몇 개월인가 지났던 어느날, 암컷이 알을 낳고서는 발로 차 떨어트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중에 무정란임이 밝혀졌습니다만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똑같은 사건이 몇 번 벌어진 후 어느 날 하교해 집에 돌아오니 새장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버지의 회사로 간다고 했습니다. 새들은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이후 학교 앞에서 파는 비극의 병아리와 금붕어, 심지어는 장마철 파인 도로에 고인 빗물에서 굴러다니던 물방개마저 집에 등장했다가 곧 죽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정도의 경험 밖에 없었던지라 동물과 같이 살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집에 인간이 아닌 움직이는 생물이 있는 삶을 제대로 그려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실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소유물에 넌덜머리가 나서 식물조차 들이기 싫었습니다(그런데 반려 식물도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그런데 지난 3월 말로 별이가 저희 집에 온지 3년이 되었습니다. 사실 별이를 데려왔을 때에도 제가 혼자라거나 또는 외롭기 때문에 무엇인가가 같이 있겠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고민은 몇 년 했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그냥'에 아주 가까웠습니다. 이제 인간 하나 먹고 살 수는 있으니까 고양이 하나 정도까지는 같이 먹고 살 수 있겠지. 뭐 그정도로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의 뉴스레터에 분명히 쓴 적이 있을 것입니다만 서비스가 폐지되면서 백업 파일만 남고 소실되었으니 다시 짤막하게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별이는 입양을 결심하고 찾은 친구들 가운데 일곱 번째의 고양이었습니다. 그전의 친구들은 다 각자의 곡절로 입양이 무산되었습니다. 보러 가기로 한 전날 도망간 친구도 있었고, 입양이 확정되었으나 집 사진의 기타를 보고는 고양이가 망가트릴 것 같다며 취소를 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후보가 된 다음에서야 별이의 굴곡 많은 묘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미 두 번 버려졌고 두 번째에는 출산 후 새끼와 함께 버려졌으며, 당시 거처에서는 다른 고양이 여덟 마리와 사는데 일진 남매 고양이에게 자꾸 맞아서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다고요. 그렇게 인천 청라지구 근처 어딘가에서 살았던 고양이 'ㅎㄴ(당시의 이름입니다)'는 저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3년 2개월, 요즘 들어 별이와 좀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제가 침대에 누워 있으면 대체로 하반신에서만 맴도는데 이제는 베게 옆으로까지 올라옵니다. 덕분에 저는 누워있는 채로 쓰다듬거나 '궁디팡팡'을 해줄 수 있어서 한결 더 편해졌습니다. 이제 여섯 살,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세월이 창창하니 언젠가는 저의 배 위에 올라와서 식빵을 구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별이와 같이 살며 관계에 대해 부쩍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나와의 관계는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 조금 아이러니하게 들리지만 불균형과 불완전함이 근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이는 인간이 아니니 인간의 공간에서는 스스로 밥을 찾아먹거나 할 수 없죠. 그래서 제가 챙겨줘야 합니다.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에 되려 유지를 위해 안간힘(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을 써야 하는 면이 있죠.
한편 의사소통도 불완전합니다. 저는 별이의 말을 이해 못하고 별이도 저의 말을 이해 못합니다. 물론 세월을 같이 보내다 보면 성조나 뉘앙스 등으로 어림짐작은 가능해지고, 아마도 별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인간과 인간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잘 통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불완전함이 관계의 상대방을 향한 인내심을 증가시켜 준다고 믿습니다.
물론 헛된 소리입니다만 타임머신이 존재해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꼭 하고 싶었던 일이 있습니다. 그게 요즘은 '별이의 아기적 모습을 보고 싶다'로 바뀌었습니다. SNS에서 온갖 아기고양이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별이는 어땠을까, 이렇게 귀여웠겠지?'라고 아쉬워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마음이 짠해지는 구석이 있습니다. 밤에 별이는 제 다리에 붙거나 그 옆에서 옆으로 누워서 자는데요, 자다 깨서 그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작은 동물이 주먹보다 더 작게 태어나서, 두 번이나 버려지고 새끼도 네 마리나 낳고 다른 고양이 여덟 마리와 함께 살면서 일진 고양이 남매한테 얻어 맞으면서까지 잘 살아남고 버텨서 결국 나한테 왔구나.
별이가 아니고 보러 가기로 했는데 전날 도망쳐버렸던 친구였다면 어땠을까요? 입양이 확정되었다가 그쪽 보호자가 파기했던 친구라면 또 어땠을까요? 오늘 저의 삶은 과연 지금과 같았을까요? 지금 저랑 같이 사는 고양이가 다른 친구가 아니고 별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별이의 아기적 모습을 모르지만 다행스럽게도 별이 아기의 어릴 적 모습은 압니다. 막 별이를 입양하고 이전 보호자에게 받은 사진 가운데 입양을 다 보내고 마지막 남은 아기 한 마리와 같이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그때의 별이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여러 보이는 게, 채 돌도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엄청 화가 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진 속 별이의 아기는 또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좀 궁금하네요.
오늘도 많은 고양이들이 번식과 유기로 인해 길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할 일이고, 혹시 입양이라도 고려를 하고 계신다면 성묘들도 한 번씩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귀엽고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아기 고양이들의 인기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적응과 사회화를 마친 성묘들도 똑같이 여러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물론 고양이가 아니라면 개들도 있고요.
이제 여름이 코앞입니다. 오늘처럼 날씨가 좋으실 때 마음껏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