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수요일(9~11일) 도쿄로 휴가를 갔다왔습니다. 여권을 보니 2023년 6월에 후쿠오카에 갔던 게 마지막이었네요. 2024년에는 집을 떠날 상태가 못 되어서 움직이지 못했고 작년엔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번에도 우연히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공연 소식을 듣지 않았으면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고양이를 혼자 두기도 그렇고 저도 혼자 있기 싫고 뭐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마블발'은 죽고 못 사는 밴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생 공연은 한 번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터라 주저없이 예매했습니다.
저의 일본 여행에는 나름의 루틴이 있습니다. 지역의 타워레코드를 찾아가 무작위로, 내키는 대로 음반을 한 장 삽니다. 그리고 백화점 꼭대기층의 문구점에 들러 엽서를 삽니다. 제가 일본어를 아직도 잘 모르니까 십 년도 넘게 이 엽서를 사면서도 정체를 알지 못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제미나이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얻었습니다. 큐쿄도(鳩居堂)라는 전통 향이나 문구, 서예 용품 등을 파는 가게에서 절기의 특징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담은 엽서라고 합니다. 큐쿄도는 1663년 다른 곳도 아닌 교토(!)에서 약국으로 문을 열어 오늘날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고요. 하나를 물어보면 둘셋을 가르쳐 주는, 과도하게 친절한 제미나이의 도움으로 긴자의 도쿄 매장에도 구경을 갈 수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예뻐서 샀다고 해도 문제는 없겠습니다만 나름의 목표는 있습니다. 이 엽서들을 전부 개별 액자에 넣어서 한 벽에 쭉 행렬을 만들어 거는 건데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가 나날이 비현실적으로 흘러가고 있어서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이것이 한 장에 1,100원 정도 하는 엽서라서 별 부담이 없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꽤 오랜만의 휴가-여행이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아이폰과 구글앱의 조합이 일본에서 편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 제미나이까지 가세를 시키니 정보에 거시적인 맥락을 추가할 수 있어서 매우 편했습니다. 그렇게 이틀까지 매우 즐거웠는데 사흘째가 일본의 휴일(건국기념일)이어서 아무 것도 못하고 인파에 휩쓸리기만 하다가 공항으로 일찍 퇴각했습니다. 김포-하네다의 표를 그나마 싸게 찾았습니다만 시각이 극단적이라 조금 힘들었습니다.
이번 여행 최고의 경험은 사실 '마블발'의 공연보다 시부야 타워 레코드에서 들은 라디오헤드의 '옵티미스틱'이었습니다. 5층인가 6층에 바이닐 매장이 있는데 거기에서 크고 좋은 스피커들로 공간이 꽉 차게 틀어 놓았더라고요. 워낙 좋은 곡이기도 하지만 좋은 기기로 크게 틀어 놓으니 평소에는 잘 안 들리던 요소들이 또렷하게 들리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뒤에 깔리는 허밍 보컬, 그리고 그와 같은 가락의 베이스라인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듣고 있노라니 'The best you can is good enough'라는 가사가 유난히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많은 경우에 그렇죠.